저주토끼

1️⃣ 한줄 평

역시 정보라. 마법사(wizard)는 아니지만 마술사(magician)!

 

♓ Inuit Points ★★★☆☆

열성 팬이 많은 정보라 작가의 첫 작품이자 출세작입니다. 판타지 호러를 표방하는 단편집이지요. 기발한 상상력과 쫀쫀히 쌓아가는 스토리의 글맛이 탁월합니다. 전 호러 장르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 한발 떨어져 읽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재미났습니다. 별셋 주었습니다.

 

❤️  To whom it matters

• 판타지 또는 호러, 둘 중 하나는 좋아하는 분
• SF만 좋아하는 분은 되돌아가주세요

🎢 Stories Related 

• '저주토끼'는 출간후 그냥 묻혔다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숏리스트에 오르고서야 크게 유명해졌습니다.
• 이 유명해진 스토리가 재미나지요.
• 협소한 장르 문학이라 무명인 채, 번역가 안톤 허가 작가를 접촉해 영문 번역했습니다.
• 정보라 작가 말론, '귀인을 못알아보고, 나도 번역할줄 아는데 대체 뭐람?' 생각했었다고 해요.
• 안톤 허는 2022년 정보라의 '저주토끼',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두 작품을 동시에 부커상 번역부문에 올려 이례적으로 번역가 중 유명해졌죠
• 정보라 작가와 안톤 허 번역가 둘 모두 성공시킨 세기의 만남이었네요.

정보라, 2017

 

🗨️ 좀 더 자세한 이야기

열 개의 환상 호러 단편선입니다.

누군 '빨리 읽고 싶어', 누군 '아 이건 쫌..' 정도로 호오가 갈리기도 합니다.

저주물을 만드는 가업을 잇는 남자, 기이하게 임신을 해서 고초를 겪는 아가씨, 황금 낳는 여우를 착취하는 장사꾼, 어려서 괴물에 잡혀간 소년, 서로 의지하며 사는 사람과 귀신, 바람과 모래를 지배하는 자와 정의를 추구하는 인간 등이 나오니까요.

 

환상 호러 답게 전개가 거칠어요.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이야기는 다반사고 죽음의 선상을 넘나 들기도 합니다. 호러의 특징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냥 호러면 징그러운 마음도 많이 들겠지만, 판타지라는 마법 소스를 치는 순간, 현실성이 탈색되니 적정한 거리감으로 스토리를 즐길만합니다.

 

정보라 작가를 처음 읽었는데, 묘사가 탁월해요.

텍스트만 딛고 가는 소설의 형식적 장점을 십분 살립니다. 서술어로 컨텍스트를 쌓아가며 서서히 조여가며 사건을 서술합니다. 딱 적절한 형용사와 명사를 사용해 의도적으로 속도를 조절합니다. 뜬금없이 결론을 보여주지도 않지만, 더 읽기 전까진 무슨 일인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영화라면 한눈에 보일 일을, 깜깜한 무대 위 점 조명으로 살금살금 보여주듯 써둡니다.

 

뭐지 싶었습니다.

열 작품 다 읽고 나니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 있는데 그게 뭔지 딱 짚이지 않았습니다. 찾아보니 초판본 작가 서문에 답이 있더군요. '쓸쓸함'을 이리저리 써보았다고 합니다.

 

맞아요.

책의 모든 작품은 쓸쓸함이 주 재료였네요.

 

저주토끼: 무덤이 둘일 운명을 사랑하게 됨
머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쓸쓸함의 한(恨)
차가운 손가락: 가해자는 지가 뭔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니, 쓸쓸함
몸하다: 정상가족에서 벗어나 사회에서 고립됨
안녕, 내사랑: 인공 반려자도 버림 받으면 쓸쓸함
덫: 탐욕은 가족도 스스로도 쓸쓸하게 함
흉터: 영원히 이해받지 못하는 자의 쓸쓸함
즐거운 나의 집: 쓸쓸해서 알아주면 보은 함. 그래도 쓸쓸해 보임.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인간의 독함이 쓸쓸함
재회: 역사의 상처가 쓸쓸해서 영원히 묶임

 

스포일러가 되지 않도록 뒤틀어 썼지만 확실히 모든 작품에 쓸쓸함이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그리고 글쓰며 각 단편의 쓸쓸함을 되새겨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진짜 호러는 쓸쓸함이구나...

 

귀신과 괴물이 무서운게 아니라 인간의 무심함, 탐욕, 배반과 학대에서 비롯한 쓸쓸함이 진짜 무서운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여름 휴가 때 읽기 좋은 책 같습니다.